머리말 7
정글 속에서 - 지금의 삶에 대하여 11
가슴에는 남기지 않는다 - 표현에 대하여 31
구도의 춤꾼이 되어 - 나의 춤에 대하여 57
언제나 혼자지만 - 고독에 대하여 87
해골을 껴안고 - 죽음에 대하여 113
몸이 곧 법당 - 몸에 대하여 137
굴레를 벗고 굴레 속으로 - 가족과 결혼에 대하여 169
절정의 순간 - 임신과 출산에 대하여 205
자연스러울 수만 있다면 - 성과 사랑에 대하여 235
벗고 살 수 없다면 - 살림, 꾸밈, 먹거리에 대하여 257
마지막 스승은 자연 - 스승과 종교에 대하여 277
●머리말 7
●정글 속에서 - 지금의 삶에 대하여 11
●가슴에는 남기지 않는다 - 표현에 대하여 31
●구도의 춤꾼이 되어 - 나의 춤에 대하여 57
page 67
평단의 반응은 분명하게 찬반으로 대립됐다. 내 춤을, 춤도 아니다, 그게 무슨 춤이냐면서 분노하던 사람들은 대개 무용가들이었고, 자신을 춤의 대가로 여기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내 춤이 춤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생각되었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춤>지의 조동화 선생 같은 분은 '홍신자는 큰 배다. 이제 그 배가 우리에게 왔다.' 하면서, 굉장한 평을 해 주셨고, 동아일보는 '전위무용과 전통음악의 재회에 성공' 이라는 큰 타이틀로 공연 내용을 기사화했다. 박용구 선생은 '1940년 이후에 처음 보는 감동적인 독무였다.' 고 크게 호평해 주었다. 1940년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 최승희의 무용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page 74
"됐다. 너는 무용을 그만두어선 안된다. 나는 네 팔과 다리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네 동작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네가 얼마나 춤 속에서 스스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가를 보려고 했던 것이다. 너는 타고난 무용가다. 결코 무용을 중단해선 안 된다. 계속하라. 너에겐 춤이 곧 구도의 길이 될 것이다. 너는 그 길을 통하여 깨달음으로 가야 한다."
춤을 추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다. 춤은 보이지만 춤추는 자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보는 자의 영혼에만 와 닿을 뿐 그 흔적은 남지 않는다. 그 춤이 나의 것이라고 자아를 내세울 수는 없다. 자아를 내세운다면 그 전에 춤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page 75
나는 나의 전부를,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송두리째 바치는 듯한 춤을 추었다. 끊임없이 관객을 의식하면서 춤을 추어 온 나였건만, 그때 내 의식 속엔 관객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없었다.
page 76
"... 그대는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억하라, 사랑의 회오리바람을. 삶의 에너지가 그대를 사로잡는 대로 따라가거라.
노래 부르고자 하는가? 그러나 그대 자신이 노래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삶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그대를 통해서 노래로 흘러나오게 하라. 춤추고자 하는가? 그러나 그대 자신이 춤춰서는 결코 안 된다. 삶의, 이 야생의 에너지가 그대를 통해서 춤으로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종교의 길이요, 구도자의 자세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삶의 충만이며 영원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바티야(Vartya 회오리바람), 삶의, 이 야생의 에너지가 어디로 그대 자신을 이끌고 갈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대의 동작은 이제 순수한 움직임으로 바뀐다. 여긴 어떤 목적도 없다. 오직 순수한 법열과 에너지의 충만이 있을 뿐이다..."
page 77
차츰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많은 춤을 보았고, 많은 춤을 직접 추었었다. 그 중에는 감동이 진하게 전달괴는 작품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작품도 있었다. 이들을 갈라 놓는 것은 바로 '에고'의 있고 없음이라는 것을.
이제 나의 춤은 완전한 '자기 없음'이 되어야 한다. 관객을 의식해서도 안 된다. 자아를 의식해서도 안 된다. 오직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만이 몸에 실려 저 영원의 율동으로 남게 해야 한다. 그것은 곧 무아의 상태다.
춤추는 자와 보는 자 사이에 말없이 흐르는 저 감동은 바로 자기를 완전히 놓아 버린 자유의 희열을 교감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page 81
그러기 위해서 나는 관객을 의식하지 말아야 했고, 나를 의식하지 말아야 했고, 마침내 춤마저도 의식하지 말아야 했다. 내가 공연을 계속하는 한, 완전히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숙명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지만, 과거 나를 인도로 휘몰았던 그런 갈등이 다시 찾아오진 않았다.
<나선형의 대각선(spirla dance)>
어둠이 지배하는 무대 위에 나는 왼팔로 해골 하나를 내 따뜻한 가슴에 소중히 끌어안고 서 있다. 그뿐이다. 언뜻 보면 그뿐이지만, 그러나 거기엔 작은 움직임이 있다. 내 몸은 바닥에 뿌리를 박은 듯 붙박이로 서서, 천천히, 천천히, 마치 여린 봄 바람에 꽃대가 흔들리듯이 그렇게 마냥 원을 그리며 흔들린다. 오른팔은 몸의 반대 방향으로 원형을 그리고 손끝이 예민하게 춤추고 있다. 내 몸의 움직임은 탄생과 죽음, 탄생과 죽음, 탄생과 죽음... 변함없이 끝없이 도는 생의 윤회와도 같다. 그 움직임은, 탄생과 죽임이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너무나 단조로운 회전의 무한 지속. 그 움직임은 너무나 단조로운 나머지 삶에 의해서도, 죽음에 의해서도 구속받지 않는 한 인간의 움직임으로 그렇게 남는 것이다.
page 86
나는 많은 무대에 섰었지만, 나의 마지막 무대는 결국 자연이 아니겠는가.
●언제나 혼자지만 - 고독에 대하여 87
page 98
그리고 밤 늦게 그녀를 웃으면서 꼭 안아주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
●해골을 껴안고 - 죽음에 대하여 113
page 136
나는 오늘도 명상을 한다. 갈마들며 내 죽음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종이 되기도 하는 나의 의식을 붙들어 매기 위해서, 그리고 항상 큰 섭리 속에서 뚜렷이 깨어 있기 위해서... 깨어 있는 의식으로 나는 말한다. 마치 용변을 보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해야겠다고.
●몸이 곧 법당 - 몸에 대하여 137
page 148
참회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중도를 잃었었다. 나는 자연과의 합치를 잃었었다. 앞으로 나는 언제까지나 이 몸의 소리에 귀기울이리라. 나는 누운 채로 몸의 근육 하나하나를 조용히 움직였다. 그것은 몸의 소리에 동의하는 조용한 춤이 되었다. 눈물이 내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page 157
항상 몸을 인식하고 습관을 잘 들이면 되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 몸에 대한 관찰과 연구다. 자기 몸을 일주일만 연구하고 나면, 간단한 산수보다고 더 쉽게 모든 것을 풀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병은 결국 신경의 과로에서 오는 것이므로 너무 욕심을 부리지만 않으면 된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하다 보면 조화가 깨지는 법이다. 조화가 깨어진 상태, 그것이 바로 병이다.
이제 명상은 어느 때보다도 내 가까이 있었다.
page 165
몸이란 무엇인가?
몸은 물질이다. 물질이기에, 그것이 보전되기 위해선 다른 물질들을 필요로 한다. 이로 인하여 모든 욕망, 모든 세속적인 욕망이 생겨난다. 그래서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존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몸은 어서 벗어던져 버려야 할 것으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몸은 소중한 것이다. 몸은 인생이라는 체험을 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몸이 생긴다. 그것은 탄생이다. 몸이 없어진다. 그것은 죽음이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체험이 그 속에서 이루어진다.
인생은 체험, 체험하는 '과정'이다. 우리 인생에 단 하나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을 과정으로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몸은 나의 법당인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경건해진다.
●굴레를 벗고 굴레 속으로 - 가족과 결혼에 대하여 169
page 183
"행복하다, 불행하다의 느낌조차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대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이따금 꿈이 피어올라, 스스로 행복하다고, 또는 불행하다고 느끼겠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그뿐이다. 너는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꿈 속에서 꿈을 진행하듯 너는 그렇게 살면 된다. 인생은 환영이기 때문이다."
●절정의 순간 - 임신과 출산에 대하여 205
●자연스러울 수만 있다면 - 성과 사랑에 대하여 235
page 255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사랑을 찾자. 그리고 그 사랑을 베푸는 공부를 하자.
가슴에서 시작된 사랑이 머리로 옮겨지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계산과 방어만이 남고 만다. 가슴을 헤치고 조용히 엿들어 보라. 사랑의 힘이 용솟음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랑의 힘이 온몸으로 퍼져 감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비의 전율이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철저히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벗고 살 수 없다면 - 살림, 꾸밈, 먹거리에 대하여 257
page 265
우리가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한 향상과 발전을 향한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것도 가능하고 저것도 가능하고, 하나도 있고 둘 이상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자는 이미 깜깜한 험로를 벗어나 빛이 있는 대로에 들어선 수행자라 할 수 있다.
깨달음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에 대한 엄청난 환상들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깨달음이란 것도 단지 고정관념이 깨어진 상태일 뿐이다. 물론 그 상태로 가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벗어나는 길이니까.
page 269
...벗고 사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입지 않은 듯 최소한으로 입고 살아야겠다는 것도 그때 품은 생각이다.
●마지막 스승은 자연 - 스승과 종교에 대하여 277
page 281
어느 날, 배꼽을 놓고 허탈한 웃음을 계속 짓는 나를 향하여 그(라즈니쉬)는 말했다.
"너는 이제 떠나기 바란다. 거리의 춤추는 거지가 되든, 이름없는 동네의 아낙이 되든, 무엇을 택해도 좋다. 너는 이미 삶은 환영일 뿐이라는 진리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가라. 가서, 갠지스 강가에 앉아 죽음을 기다리든, 도시의 인기 높은 광대가 되든, 결국은 별차이가 없을 것이다. 다만 네가 원하는 바에 따르라. 아무 두려움을 가질 것 없다."
그날 나는 그의 산보 시간을 기다렸다. 그는 하루에 꼭 4마일씩 걸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 걷다가 라시를 한 잔 사 드리고 싶다고 청해, 가까운 찻가게도 갔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묵묵히 차를 나누었고, 차를 다 마셨을 때 우리는 일어섰다. 헤어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렇게 담담했다.
page 283
마하라지를 찾아갔을 무렵 나에게는 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가장 절실했었다. 그는 말했다.
"바로 이 순간, 너는 신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은 단지 네가 존재한다는 사실뿐이다. 그것만이 확인된 사실이다. 너는 신에 대해서 배웠을 뿐이지 그를 보지는 못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신을 본 것 같은데요."
"너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너의 존재만이 오직 분명한 하나의 사실이다. 그것만이 네가 아는 사실이다. 너는 신이 있다고 느끼고 있다. 네가 본것은 바로 그 느낌의 반영일 뿐이다. 너에게 '나는 이렇게 있다(I am)'라고 하는 존재의식이 없다면 다른 아무 것도 거기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그 존재의식에 달려 있다. 이 세계는 네 존재 의식의 긴장 상태일 뿐이다. 네가 의식하지 못하면 너는 기억할 수 없다. 네가 기억하지 못하면 너는 세계를 알 수 없다. 신이란 마음 속의 관념이다."
"그렇다면 신이란 없다는 말씀입니까?"
"흔히 말하는 그런 신은 없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의식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 우주를 감싼 진정한 실체는 오직 하나이다. 사람마다 신에 대한 각자의 개념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실체가 갖가지 일 수는 없다. 삼라 만상은 변화한다. 그 모든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되 그 자신은 변화하지 않는 유일한 본질이 있다. 표현하자면 그것을 신이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신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것은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그것에는 형상이 없다. 그 순수한 실체는 묘사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부정을 통해서 그것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것 이외의 모든 것이 부정되고 나면 그것만이 남을 것이다."
"호흡을 지켜봄으로써 우리의 생명이 연장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우리가 호흡을 통하여 얻으려는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자각(atma-siddhi)이다. 옴(Aum)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호흡인 것이다. 나를 의식한다는 것과 호흡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숨쉬지 않는다면 스스로에 대한 의식도 없다. '나는 이렇게 있다'는 의식('I AM' consciousness)은 호흡을 아는 데서 비록된다. 모든 지식은 결국 신을 알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신'이란 '나는 이렇게 있다'라는 의식의 속칭일 뿐이다. 그러므로 네가 신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의식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곧 이사와라(isawara), '나는 이렇게 있다'는 의식이다.
신은 언어 너머에 있었다.
"결국 너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 너에겐 이사와라의 체험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체험'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느 날 밤의 꿈이었다.
page 287
그 시간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나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막막하고 지루한 느낌이 자꾸만 밀려왔다. 이 존재계 전체에서의 내 위치가 미미하고도 하잘것없다는 인식이 순간적으로 찾아왔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흐리멍텅해져 버린 것이다. 특히 알 수 없는 것은 내 존재의 의미였다. 나는 그 동안 수행을 통해서 진정한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었다. 나에겐 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모든 것을 분간할 수 없는 혼돈 상태로 들어선 것이다.
나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마하라지였다. 나는 그에게 나의 꿈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그에게뿐만이 아니라 나는 이 꿈 이야기를 몇 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그것을 알았다.
"마하라지, 당신은 신에 대한 의식을 얻기 위해선 자신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에게 '나는 이렇게 있다'는 의식이 찾아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뒤로 나 자신을 더욱 모르게 되었습니다."
"바스(bas)!"
"바스?"
"이제 됐다는 것이다. 처음에 잔물결은 스스로 잔물결인 줄을 안다. 하지만 자신이 큰바다 위의 잔물결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잔물결은 아무 것도 모르게 된다. 오직 큰바다와 하나로 출렁일 뿐이다."
큰바다와 하나로 출렁일 뿐이다...
"그런데 이 막막함과 지루함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느끼는 것이 누구인가?"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너는 비옥한 대지와 같은 것이다. 많은 것들이 네 위에서 자라고 네 속에서 나온다. 어네게서 자라나온 것들에 대해 너는 더 이상 책임이 없다. 네 위의 초목이 죽어 사라진다 해도 너는 이 대지처럼 남아 있다."
"이 막막함과 지루함을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그대로 두라는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서 그냥 지켜보라. 체험하는 자는 거기에 남을 것이지만 체험은 왔다가 사라질 것이다. 너는 모든 감각적 체험을 넘어선 그것의 목격자이다."
page 298
이곳이 아닐지라도 결국은 나의 고향, 자연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날 부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의 티없는 눈동자,
한밤중 잠 못 이루게 하는 바람소리,
나뭇잎을 두드리고 흩어지는 작은 빗방울,
어느덧 솟아난 무지개,
저녁 노을에 비친 구름떼,
잔디에 고스란히 앉아 있는 아침 이슬,
임자 없이 자란 들판의 갈꽃들,
그리고 새벽이 오기 직전의 이 적막과
물처럼 흐르는 어둠과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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